[아이] With you

해당 글은 세몬님의 COC 시나리오 RUN TO YOU를 기반으로 쓰인 글이며,
ROM님의 COC 시나리오 쾌도난마 페어로 진행하였기에 두 시나리오의 직•간접적인 스포가 존재합니다.


“선배! 입구부터 꽃이 피었어요.”
“정말 활짝 피었네. 예쁘다~ 아, 유이 뛰지는 말고…! 넘어질라.”
 
다시 찾은 센소지는 마츠리가 열린 그날만큼 사람이 붐비진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수많은 관광객, 새로운 한 해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 따뜻한 봄날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온 여러 형태의 인원들. 창문 밖으로 구경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렌은 처음 보는 유이의 표정이 새로웠다. 홀로 기억하는 머릿속에 유이는 너무나도 선명했지만 동시에 절망스러울 정도로 흐릿했으니. 서로에 대해 인과로 얽힌 비밀이 없는 대신, 파트너라든가 그냥 후지모토 유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기엔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이었다.
 
유이는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로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몸을 옮겼다. 고개를 들어 꽃을 바라보면 단정하게 땋아 올린 머리 위에 장식이 햇살에 반짝였고, 샛노란 유카타가 그 흐름을 따라 팔락였다. 눈앞에 펼쳐진 평화로움을 바라보던 렌은 작게 웃으며 챙겨온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으면 검은 프레임의 액자, 입사할 때 찍은 단정한 증명사진. 짧은 순간에 눈앞을 스치는 그 시간에 영원히 박제된 너와 저주처럼 따라붙는 그날….

“렌 선배!”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뜨면 작은 디카 안에 유이가 담긴다. ‘찰칵─’ 화사한 봄과 반짝이는 햇빛 아래에서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얼굴이 봄이라는 프레임에 새롭게 피어난다. 선명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삶, 악몽이 틀렸다고 말해주던 목소리, 함께하자고 이끌어준 손길. 그렇게 나아온 오늘은 남에게 빌린 하루가 아닌 오롯한 아마네 렌과 후지모토 유이의 시간이었다.
 
“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게들 먼저 들릴까요? 전에 먹었던 과자도 더 먹고 싶고, 오마모리 샀던 곳도 다시 가고 싶어요. 몰랐는데 여기 굉장히 맛있는 메론빵도 있고 고로케도 있대요! 병아리 과자랑 타코야끼도 팔고, 당고랑 모찌도 먹어야 하고…!!!”
“맛, 맛집… 많이 알아 왔구나. 좋~아.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전부 돌아볼까?”
“좋아요! 얼른 가요 선배!”

렌의 빈손을 붙잡아 이끄는 손은 오늘 검은 장갑이 벗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의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렌이 그 작은 손을 마주 잡은 채, 걸음을 따를 수 있는 이유는 살면서 닿아본 것 중에 가장 뜨거운 온도였기 때문이었다. 유이는 왜인지 최근 들어 스킨십이 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와 팔이나 가슴팍에 꿍, 머리를 박고 부빈다든가 -후와는 유이의 이런 행동을 유이만의 ‘화이팅’이라고 불렀고 그걸 들은 카케루는 ‘유이팅’이라는 요상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옷자락을 잡아당기다가 슬쩍 손가락이나 손을 잡는다든가 때로는 반짝반짝한 얼굴로 두 팔을 벌린 채 바라보며 안아달라는 -혹은 안아주겠다는- 행동을 이어갔다. 그 누구도 가까워진 거리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좋은 변화라면 그냥, 아무 이유가 없어도 좋은 거 아니냐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둘은 긴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물론 유이는 몇 번이고 간식을 파는 상점을 지나지 못해 줄을 서고,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도 모자라 렌까지 양손 가득 간식을 손에 쥐고 다녔다. 중간에 자판기에서 마실 걸 뽑던 렌은 ‘점심은 좀 늦게 먹어야 하려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렌에게 받은 음료를 마신 유이는 “소화됐으니까, 반대쪽에 있는 간식 가게도 가볼까요?!”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오늘도 완벽히 유이를 과소평가한 렌은 ‘배고플 틈 없이 먹고 싶다는 거 다 먹여야지.’라고 꽤나 아빠 같은 생각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손님이구먼, 어서 오게. 흐음… 그런데 왜인지 익숙한 얼굴들이군.”
 
낯설지 않은 가게에 발을 들이자 전시된 기념품을 정리하던 사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한 두 사람이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대로 다시 입을 열려고 한 그때, 껄껄-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억났구만. 아무리 모든 손님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경찰을 까먹긴 쉽지 않지 그래. 그때의 사건은 잘 마무리됐나?”
“잘 지내셨죠? 그날 사장님의 협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용의자들도 모두 체포되었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덕분이라니, 둘이 노력한 결과가 아니겠나. 늙은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먼. 하긴, 이렇게 둘이 유카타까지 갖춰 입고 이 작은 가게를 다시 찾아왔다는 건…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겠지. 어디… 오마모리가 도움이 됐나?”
“네, 무척이요!”
“정말 잘됐구먼.”
 
사장님은 느릿하게 말하며 계산대 옆 의자에 앉아 렌과 유이를 올려다봤다. 그 말에 대답한 유이는 조심스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이 들어 올려지면 그 끝에 ‘心願成就’가 적힌 갈색 오마모리가 반동을 따라 대롱대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렌의 핸드폰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無病息災’가 적힌 녹색 오마모리가 달려 있었으니까. 곱게 달린 부적을 보며 미소 지은 사장님은 다행이라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렌의 바람이 유이의 바람이었고 유이의 바람 또한 렌의 바람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니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여전히 웅장하네요! 천천히 둘러보니까 너무 새로워요.”
“유이는 본당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지? 슈리쌤이랑은 근처만 왔다고 했고, 전에 같이 왔을 땐 근무 중이라 제대로 못 봤으니까. 오늘은 느긋하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네! 지금 무척 가슴이 두근거려요. 웅장함에 압도되고, 이뤄질 약속에 마음이 설레고, 여기 있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무탈한 내일을 기원하고 있어요….”
 
느릿하게 이야기하는 유이는 가슴에 손을 얹은채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에 그려진 붉은 용과 두 신의 그림. 그들의 아래에서 내일을, 우리가 항상 기다리고 맞이하는 미래를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 옆에 웃으며 서 있는 애정하는 이와 전과는 완벽하게 대조되는 기분과 분위기. 이 고양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슨 말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생각은 길지 않고, 결론은 빠르게 내린다. 사랑. ‘사랑’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나아감을 멈추지 않는 것. 고민하고 후회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유이는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와서, 지금 이 순간에 변함없이 삶이 이어져서 다행이라고.
 
“다행이에요….”
“응?”
“지금 선배랑 함께 있을 수 있어서요.”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응. 정말로… 무척이나 다행이야.”
 
걸어온 길이 달라도 결국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 우리들의 삶처럼. 유이는 렌이 겪어온 일을 알지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끝에 닿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완연히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 아직 서로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함께라는 사실이겠지. 본당에는 점점 더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렌은 손을 뻗어 조금 흐트러진 녹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유이, 이만 점심 먹으러 갈까? 우리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헉, 좋아요. 점심 메뉴는 뭐가 좋을까요?”
 
충분한 여운에서 벗어난 유이는 렌의 말에 두 눈을 반짝였다. 웃음만이 절로 지어지는 반응에 렌은 핸드폰을 들어 라인에 쌓인 수많은 맛집 링크를 훑었다. 중심에 선 해가 기울어 하루의 절반이 넘어가고 우리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강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낸 렌은 유이를 데리고 다음 목적지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센소지 이후의 계획을 전혀 모르는 유이는 호기심에 가득 차 “렌 선배. 이제 어디로 갈 예정이에요?”하고 질문했지만. 렌은 그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보면 알 거야.”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렌이 유이를 이끈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카이트리였다. 멀리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탑이었지만 입구 앞에서 올려다보는 전망대는 몸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건축물이었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에요. 올라가서 보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지겠죠?”
“유이는 역시 모르는 게 없네. 올라가서 보는 도쿄 야경이 정말 아름답거든. 기대해도 좋아. 그리고… 밤이 되기 전까지 갈 곳은 또 따로 있어.”
“으응?”
 
가볍게 고개를 기우는 유이를 보며 렌은 어서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렌의 이런 적극적인 행동들은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었다. 유이는 그날을 기점으로 변화한 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고, 좋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유이에게 아마네 렌은 든든한 선배였고, 언제든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오빠였고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아빠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유이는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동료 간의 신뢰라든지 파트너로서의 절대적인 믿음이라든지 이런 단순한 것에 그치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냥, 그냥. 이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아마네 렌과 후지모토 유이가 나아가는 운명을 함께할 삶의 동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유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지잡이 사건의 첫 피해자였다. 10살에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한 채 과거에 멈춰있었다. 그렇게 멈춘 시간은 사지잡이를 잡은 이후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에 공백이 생겼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봤을 경험을 하나도 겪어보지 못했다. 유이는 이런 자신의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렌은 작고 어린 제 후배를 잃고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게 당연한 삶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세상 어느 곳이든 날개를 펼쳐 날아가길 바랐고, 비로소 너의 세상이 더욱 넓어지길 바랐으니까.
 
“우와….”
“와, 생각보다 더 멋진데. 나도 아쿠아리움은 엄청 오랜만이야.”
“젓, 합… 저는, 처음이에요…!”
 
혀를 씹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채 들뜬 목소리를 누르고 눌러 조곤조곤 대답하는 유이의 모습에 렌은 따라 소리를 낮춰 웃음을 흘렸다. 센소지에서만큼 뛰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쫑쫑쫑 작은 발이 움직이면 큰 보폭이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쿠아리움은 렌의 예상보단 작은 형태였지만 유이는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그 앞에 머물러있었다. 푸름이 가득한 공간에 네가 들어선다. 시야에 펼쳐진 물은 쉴 새 없이 일렁인다. 내 눈앞을 가리는 건 눈물이 아니고 너를 향한 윤슬이었다. 유리 위로 작은 손이 움직이면 신기하게도 물고기들이 그 손길을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네가 세상 모든 걸 사랑하니, 마땅히 그들도 너를 사랑할 뿐인데. 너는 그걸 알고 있을지. 유이는 모든 공간을 꼼꼼히 돌아봤다. 특히, 메인관에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는 카페에 눈을 번뜩이다가도 이내 홀린 듯 큰 수조로 발을 움직였다. 좋아하는 것보다 우선시되는 새로운 경험.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

“선배, 지금 저희 바닷속에 같이 있어요.”
 
아이처럼 감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다시금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이번엔 바다의 이름을 가진 프레임에 유이가 빠져들었다. 우리 이제 추락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깊은 미지의 바닷속을 여행한다는 건 새로운 세상으로 비상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아쿠아리움을 잔뜩 구경한 유이는 카페에서 간식도 잊지 않고 챙겨 먹고, 기념품샵에서 펭귄 인형까지 구매했다. 새하얀 펭귄 인형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는 모습에 렌이 “인형 가지고 싶으면 사줄까?”하고 물었지만, 유이는 고개를 흔들며 “슈리 닮았어요. 제가 살래요!”라고 대답하며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더 늦기 전에 식당에서 배도 채우고, 식후 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으니 그제서야 하늘에 떠 있던 해가 달로 바뀌어 있었다.
 
“자, 이제 올라가는 거야. 귀 먹먹해질 거니까 놀라지 말고.”
“그 정도로 빨리 올라가요?”
“응. 저기 봐봐.”
 
엘리베이터가 출발하고 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선 실시간으로 탑의 높이가 측정되고 있었다. 두 자리 숫자는 금세 세 자리로 바뀌고 몸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귀가 먹먹해진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유이가 손을 들어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부드럽게 승강이 멈추고 경쾌한 알림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450m 높다고들 말하지만, 너라면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높이. 그곳에 네가 부드럽게 하강한다.
 
“헉, 와아…….”

아침부터 밤까지 유이의 감탄이 렌의 하루를 가득 채웠다. 새까만 세상에 우리들의 발밑으로, 수평선 너머의 시야로 온갖 빛이 반짝인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보는 불빛들은 별과 같아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우주 한 가운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주의 품에 갇힌 유이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큰 눈이 온 세상을 담고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이런 시답잖은 물음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이미 온몸으로 저렇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네가, 우리가 그냥 지금 좋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둘은 느릿하게 전망대를 따라 걸었다. 높은 공간과 맑은 날씨 그리고 반짝이는 야경은 아침에 들린 센소지까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평소엔 렌보다도 훨씬 느리던 발걸음이 오늘따라 몇 걸음을 더 앞서간다. 그 거리를 쫓던 렌은 갑자기 몰린 인파에 걸음을 멈췄다. 앞서 걷던 유이가 많은 사람에게 휩쓸려 몸을 비틀거렸다. 닿지 못할 거리인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그럼 나는, 유이한테 좋은 선배였을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에게 닿지 못한 말이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유이. 나는 사실, 아직도 종종 이곳이 꿈일까 봐 두려워. 네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을까 봐 무서워.’ 여전히 뻗은 손은 공허했고, 나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렌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배, 렌 선배...!”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나를 부르고 있다. 작은 의지가 흉터 가득한 왼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렌은 붙잡은 그 손을 놓치지 않고 가볍게 당겨 유이를 품에 안았다. 메아리가 수없이 울리고 퍼진다. 세상을 건너, 시간을 넘어 결국엔 너에게 닿고 말았다. 렌은 눈을 떴다. 눈을 감은 시간은 순식간이었고 고요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야가 밝아지면 선명한 삶이 렌의 시선과 맞붙었다. 여전히 맥이 뛰고 닿은 온기가 따스하다. 네가, 내가. 같은 곳에서 존재하고 있다.
 
“안 다치셨죠? 먼저 앞서가서 죄송해요.”
“아냐, 내가 더 빨리 쫓아가야 했는데. 유이야말로 안 다쳤지?”
“그럼요. 선배 덕분에요!”
 
안심한 렌은 주변이 느슨해질 때까지 유이를 품에 가뒀다. 고개를 내리면 이제는 익숙해진 포옹에 가만히 안겨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입꼬리를 당기고 눈을 접으면 따라 활짝 벌려지는 입과 순하게 내려가는 눈꼬리가 화사하게 빛을 냈다.
 
“유이, 또 가보고 싶은 곳 있어?”
“네? 으음….”
“세상엔 네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아주 많아. 나는 유이가 더 많은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면 좋겠어.”
“음… 당장은 떠오르는 곳이 없어서 어려워요.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라면 무엇이든 좋아요. 선배랑 함께라면 더더욱이요!”
“그렇네. 나도 유이랑 함께라면 어디든지 괜찮을 것 같아.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자. 못해본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지금 이렇게, 살아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굳이 뒷말을 하진 않았다. 이제는 정말 일분일초라도 악몽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렌은 여전히 유이의 얼굴을 마주한 채 눈을 깜빡였다. 아마네 렌이라는 프레임에 후지모토 유이를 저장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사진, 평생을 간직할 기억.
 
너는 알고 있을까, 꽃이 피려면 씨앗을 옮겨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거.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자유롭게 비행하는 궤도마다 꽃을 피운다. 부드러운 날갯짓에 꽃이 흐드러진다.
 
그래, 네가 날아야 비로소 내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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